아래의 논어집주(朱子) 서설을 보면 공자는 한평생 인사상을 역설하다 돌아가셨다. 그런데 이와 비슷한 시기에 손무, 오자서, 관중, 안영, 오기, 손빈 등은 부국강병을 통한 전쟁과 정벌 등으로 당세를 풍미하다 죽었다. 사실 어떤 것이 옳게 사는 법인가는 누구나 쉽게 안다. 그렇지만 누구나 그렇게 살지는 않는다. 그러기에 끊임없이 선악은 상대하고 세상은 시끄럽다.
어떤 것이 가장 근원적인 교육방법이며 바른 삶인가? 이건 정말 '도'를 물은 것도 아닌데 '개구즉착'이다. 무슨 말을 할 수 있으랴?다만 지금의 이러한 나를 놓치지 않고 살아갈 뿐이다...
논어집주 序說
史記世家曰 孔子는 名丘요 字仲尼니 其先은 宋人이라 父는 叔梁紇이요 母는 顔氏니 以魯襄公二十二年인 庚戌之歲의 十一月庚子에 生孔子於魯昌平鄕郰邑하다.
爲兒嬉戱에 常陳俎豆하며 設禮容이러시니 及長하야 爲委吏하여는 料量平하고 爲司職吏하여는 畜蕃息하시니라 適周하사 問禮於老子하시고 旣反而弟子益進이러라.
昭公二十五年甲申은 孔子年三十五라 而昭公奔齊魯亂하니 於是에 適齊하여 爲高昭子家臣하여 以通乎景公하시다 公欲封以尼谿之田한대 晏嬰不可라하니 公惑之어늘 孔子遂行하여 反乎魯하시다. 定公元年壬辰은 孔子年四十三이라 而季氏强僭하고 其臣陽虎가 作亂專政이라 故로 孔子不仕하시고 而退하야 修詩書禮樂하시니 弟子彌衆이러라.
九年庚子는 孔子年五十一이라 公山不狃가 以費畔季氏하고 召孔子어늘 欲往而卒不行하시니라. 定公이 以孔子爲中都宰하니 一年에 四方則之라 遂爲司空하시고 又爲大司寇하시다. 十年辛丑에 相定公하사 會齊侯于夾谷하시니 齊人歸魯侵地하다 十二年癸卯에 使仲由爲季氏宰하여 墮三都하고 收其甲兵이러니 孟氏不肯墮成이어늘 圍之不克하시다. 十四年乙巳는 孔子年五十六이라 攝行相事하사 誅少正卯하시고 與聞國政하시니 三月에 魯國大治라 齊人歸女樂以沮之하니 季桓子受之하고 郊又不致膰俎於大夫한대 孔子行하시니라.
適衛하사 主於子路妻兄顔濁鄒家하시다. 適陳하실새 過匡하시니 匡人以爲陽虎而拘之하다 旣解에 還衛하사 主蘧伯玉家하사 見南子하시다 去適宋하신대 司馬桓魋欲殺之어늘 又去適陳하사 主司城貞子家하시고 居三歲而反于衛하시니 靈公不能用하다 晉趙氏家臣佛肹이 以中牟畔하여 召孔子어늘 孔子欲往이라가 亦不果하시다 將西見趙簡子라가 至河而反하사 又主蘧伯玉家러시니 靈公問陳이어늘 不對而行하사 復如陳하시다.
季桓子卒에 遺言謂康子하되 必召孔子라하더니 其臣止之한대 康子乃召冉求하다 孔子如蔡及葉하시니라 楚昭王이 將以書社地로 封孔子러니 令尹子西不可라하니 乃止하니라 又反平衛하시니 時에 靈公已卒하고 衛君輒이 欲得孔子爲政하며 而冉求爲季氏將하여 與齊戰有功한대 康子乃召孔子어늘 而孔子歸魯하시니 實哀公之十一年丁巳而孔子年六十八矣라 然이나 魯終不能用孔子하고 孔子亦不求任하사 乃敍書傳禮記하시며 刪詩正樂하시며 序易彖繫象設封文言하시니라.
弟子蓋三千焉에 身通六藝者七十二人이러라 十四年庚申에 魯西狩獲麟하니 孔子作春秋하시니라 明年辛酉에 子路死於衛하고 十六年壬戌四月己丑에 孔子卒하시니 年七十三이라 葬魯城北泗上하다 弟子皆服心喪三年而去하되 惟子貢廬於冢上하니 凡六年이러라.
孔子生鯉하시니 字伯魚라 先卒하고 伯魚生伋하니 字子思니 作中庸하시니라.
何氏曰 魯論語는 二十篇이요 齊論語는 別有問王之道하여 凡二十二篇이요 其二十篇中章句도 頗多於魯論이라 古論은 出孔氏壁中하니 分堯曰下章子張問하여 以爲一篇하여 有兩子張하니 凡二十一篇이요 篇次不與齊魯論同이니라
程子曰 論語之書는 成於有子曾子之門人이라 故로 其書獨二子以子稱하니라
程子曰 讀論語에 有讀了全然無事者하며 有讀了後에 其中得一兩句喜者하며 有讀了後에 知好之者하며 有讀了後에 直有不知手之舞之足之蹈之者니라
程子曰 今人은 不會讀書로다 如讀論語에 未讀時도 是此等人이요 讀了後에도 又只是此等人이면 便是不會讀이니라
程子曰 頤自十七八로 讀論語하니 當時已曉文義러니 讀之愈久에 但覺意味深長이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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